보성 천보다원, 문평식 대표
차는 생물이다. 전통적인 음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문화, 지역이나 국가의 역사와 함께해온 매개체다.
하지만, 국내 차 산업은 이런 대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 현대 음료 산업과 문화의 첨병이자 지렛대인 카페가 커피전문점 일색이 되면서 메뉴판의 ‘구색’으로 전락한데다 전통적인 찻자리 문화 역시 젊은이들의 외면을 받으면서 위축되고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보성과 하동, 제주 등지의 차 생산 농가의 ‘노화’도 무관치 않다. 초창기 농민들이 고령에 접어들면서 생산성이 떨어졌고, 우전이나 세작 등 값비싼 전통차를 찾는 사람들이 줄면서 예전과 같은 매출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졌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나름의 관점과 집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찾고 일구고 가꾸는 사람들은 있다. 카페에 맞는 차제품 생산과 유통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2세대 차인들이 그 한 갈래라면, 전통적 영농과 유기농 인증, 직접판매 방식을 통해 차 자체의 내재적 의미와 가치를 더해 온 낙향 차인들이 또 다른 맥이다.
하동 연우제다의 서정민 대표와 이옥희 실장은 대표적인 2세대 차인이다. 부부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차밭의 확대와 가공 시설 확충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한편, 카페용 벌크 제품 라인업과 적극적인 전시마케팅을 통해 차의 대중화를 선도하고 있다.
반면, 천보다원의 문평식 대표와 부인 조해숙 여사는 서울살이를 접고 고향으로 내려와 전통적 방식으로 차밭을 일구고 가꿔 온 낙향차인이다. 재래식 재배와 수확 가공, 유통 방식을 고집한다는 면에서 이들의 외모는 토박이 차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도시에서의 지식과 경험, 글로벌 마인드를 바탕으로 일찌감치 차의 부가가치 확대에 주력하는 한편, 해외에 눈을 돌려 교류와 협력을 추구하는 등 과거의 현재화, 전통의 현대화를 모색해 왔다는 면에서 전통적 차인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그 배경에는 외지에서 보고 들은 지식과 정보가 있었고, 일찌감치 국내 차 산업의 한계를 간파하고 대안을 찾고자 했던 선견지명이 있었다.
2세대 차인들과 낙향차인들의 공통 분모는 오픈마인드‘다. 이들은 제품의 다양화를 통해 국내 음료 산업의 핵심 고리로 떠오른 카페 시장 진출과 확산을 꾀하는 한편, 고급화와 특화를 바탕으로 해외 시장을 동시에 공략해왔다는 면에서 일맥상통한다.
그 배경에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깔려 있다. 문 대표는 “차는 세계 경제 변화와 물가 상승, 경기 침체 같은 외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래서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만으로는 시장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전통의 가치를 지키되, 소비자의 변화에 맞는 새로운 제품 개발과 시장 개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문 대표는 팔순의 나이에도 차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도 강한 ‘젊은’ 차인이다. 그는 지금도 종종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만큼 앞으로도 더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하곤 한다. “진정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차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강조한다.
그는 보성 태생이다. 녹차를 가까이 접하며 자라면서 차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겼고, 그 안에 담긴 전통성과 지역성의 가치를 체득하게 되었다. 서울 이대 앞에 스타벅스 1호점이 생겼던 1999년 말, 남들이 다들 부러워하는 ’은행원‘ 일을 관두고 낙향을 단행한 데에는 이런 ’그리움의 DNA‘가 크게 작용했다.
문 대표는 부인에 대해 ‘따뜻한 안방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56년 동반자이자 26년간 찻일은 도맡아 해온 제다의 권위자라는 설명도 잊지 않는다. 충남 공주 태생이지만, 문 대표의 낙향을 적극 지지해주고 도와주고 지탱해준 버팀목이기도 하다며 내심 고마워한다.
보성 회천면 동율리 1-9번지. 멀리 남해 바다가 보이는 언덕배기, 메인 차밭들을 살짝 등진 채 ’자연인‘처럼 자리잡은 ’1000가지 보물‘ 천보다원의 진정한 보물은 ’사람‘이다.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는 수 천 수 만의 찻잎들이고, 그 가치를 알아봐 주고 함께 해준 수 백 수 천의 고객들이다.
다향제를 앞두고 한창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 문평식 대표를 만났다.
팬데믹 이후 국내 관련 산업과 카페 문화가 불황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제 정세의 난맥상과 국내 정치 경제의 비효율성이 겹친 결과라 여겨지는데요, 천보다원의 경우에는 그동안 어떤 어려움을 겪었고, 최근에는 어떤 상태인지요?
현재 차 시장은 세계 경제 변화와 물가 상승, 경기 침체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전통적인 차 시장은 예전 방식 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전통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변화하는 소비자 흐름과 시장 환경에 맞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관련 사업을 오래 해온 분들 사이에서 앞으로는 예전과 같은 호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에 따른 돌파구는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제품의 변화와 시장 확대가 가장 중요합니다. 기존 방식이나 익숙한 유통 구조에만 머무르기보다, 소비자들이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살피고 그에 맞는 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합니다.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시장 활성화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차에 입문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차 농사와 가공 생산, 유통을 직접 다 하고 계신데, 이런 형태의 사업이 본인의 성격이나 체질, 신념과 잘 맞는다고 생각하시나요?
고향이 보성이라 어릴 때부터 녹차를 비교적 가깝게 접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차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단순히 마시는 음료가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전통, 문화가 담긴 분야라는 점에 더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 경험 때문에 차 산업에 더 애정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차의 가장 큰 가치는 무엇일까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라는 데 있다고 봅니다.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죠. 차 한 잔을 나누는 시간 자체가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 관계를 조금 더 깊게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다른 차 생산자나 가공회사와 차별화되는 천보다원 만의 특징, 독특한 정서나 특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매년 인증비를 들여가면서까지 유기농을 고집하시는 이유는 뭘까요?
대량 생산과 단순 유통 자체보다 상품이 가진 개별적인 가치와 특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소비자에게 단순히 제품 하나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차별성, 이야기, 정체성을 함께 전달해야 경쟁력이 생깁니다. 제품마다 가진 특성을 잘 살리고, 그것이 소비자에게 분명하게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차를 재배하고, 만들고 알리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써오셨는데요, 현재는 어떤 상황이고,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특히 많은 공을 들인 부분이나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무리하게 욕심을 내기보다 현재의 기반을 잘 유지하면서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가고자 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빠른 확장보다는 안정적으로 신뢰를 쌓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렇게 해야 지속 가능한 성장도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대표님은 차 업계의 ‘마당발‘이자 ‘대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인으로서는 보기 드문 해외통이신데다 오픈 마인드의 소유자로서 나름의 소신과 비전을 바탕으로 바른 말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남 모르는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 가장 큰 고비는 언제 어떤 것이었고, 이겨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과정에서 깨달은 신념이 있으시다면?
차 산업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오랫동안 애정을 가지고 바라봐 온 분야입니다. 차를 좋아하는 마음이 꾸준히 이어져 왔고, 그만큼 이 분야를 대할 때도 책임감과 진정성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차 산업의 가치와 의미를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기보다는,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찾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않았고,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감도 조금씩 키울 수 있었습니다. 문제를 크게만 보기보다 하나씩 풀어가려고 했던 태도가 저를 버티게 해준 것 같습니다.
대외 활동도 꾸준히 해오셨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관련 전시회에 많이 참여하고 관련 대회에도 관심을 보이시는데,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직접 참여하고자 하는 이유가 뭘까요? 이를 통해 얻은 성과나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차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시나 작가와의 만남처럼 현장에서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과물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과 연결되는 경험을 특히 가치 있게 느낍니다.
유아독존과 각개전투 경향이 국내 차 업계의 고질병이라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전국 업계를 아우르는 네트워크를 통해 힘을 키우고 시너지를 추구해야 한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고 어떤 입장을 갖고 계시는지요?
자연과 어우러지고 감성을 담아낼 수 있는 분야에 매력을 느낍니다. 특히 공예나 차 문화처럼 단순히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정서와 분위기를 함께 전달할 수 있는 분야가 좋습니다. 자연친화적인 요소와 감성적인 가치가 함께할 때 더 깊은 울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인들은 이런 차의 속성과 특성을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를 인정해야 나 스스로도 빛날 수 있습니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협력하면서 미래를 도모한다면 우리나라 차 산업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요즘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위생과 환경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환경 문제는 이미 우리 앞에 바짝 닥쳐온 시급한 현안이자 절대절명의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차 업계도 예외는 아닐 것 같은데요, 이 화두는 어떻게 풀려고 하시는지요?
친환경은 이제 개인의 선택을 넘어서,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나 기관, 기업 차원의 정책적 뒷받침도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결국 친환경은 개인 실천과 제도적 지원이 같이 갈 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카페용 B2B 제품에 주목하고 계신데요. K-Caf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차 가공 생산자로서 ‘이런 게 한국형 차다’라고 정의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상품화와 유통은 시장을 넓히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겠죠. 다만 그 과정에서 대량 생산 제품이나 수입품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우리만의 정체성과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시장 확대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국산화와 자체적인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도 함께 가야 한다고 봅니다.
카페를 가리켜 ‘사랑방’이라 일컫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거장’이란, 다분히 공익적이고 공유적인 공간 개념을 대입하는 사례도 종종 보입니다. 하지만 카페 역시 이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소상공인이거나 자영업자이고, 수익성 극대화와 지속가능한 경영이 절대 미덕인 사업체입니다. 카페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은 어디까지일까요?
전통적인 공간이나 문화 요소가 과거의 것이 아니라, 지금의 감각으로 충분히 재해석될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분위기나 공간 개념도 현대적으로 풀어내면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고, 오히려 그 가치가 더 살아날 수 있겠지요.
결국 전통은 그대로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와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방식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카페는 현대적인 공간이고, 젊고 미래지향적인 시장입니다. 국내 카페가 잘 발달된 만큼 앞으로 차의 대중화를 위한 소중한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차 관련 사업을 생각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충고가 있다면?
전반적으로 더 보완해야 할 점이 많아 보입니다. 부족한 부분을 막연하게 넘기기보다, 하나씩 점검하면서 실무적인 이해와 표현력, 전문성을 더 키워나가야 합니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태도가 오히려 성장의 시작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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