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커피’가 양평 국수역 근처에 새 둥지를 틀었다. 그 배경에는 소규모 동네카페, 떠오르는 상권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는 골목카페들의 애환이 깔려 있다.
공들이고 정 붙인 동네, 첫 가게에 대한 설렘과 기대 속에서 쓰다듬고 가다듬으며 갈고 닦은 터를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어쩌랴.
조물주보다 겁난다는 건물주의 갑질 때문이든, 가파르게 오르는 월세 탓이든, 아니면 돌발적 재난이나 환란 때문이든, ‘어느날 문득’ 손때 묻은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어이없음, 그 억울함과 분함 역시 작은 개인카페가 감당해야 할 몫이자 태생적 한계임을.
근 반 년 가까운 준비를 거쳐 2024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문을 연 바람커피 양평점이 갖는 의미는 그래서 더 간절하고 절실하다. 서울 연남동에 있었던 10평 짜리 바람커피 원두상점을 닫고 새로운 각오로 단행한 모험이었기 때문이고, 처음에는 건물 반쪽 30여평(98.79㎡)만 쓰기로 했다가 내친김에 60여 평 전부를 쓰게 된, 그래서 예상보다 일이 커지게 된 경우라서다.
무엇보다 거기에는 넓은 마당(주차장)이 있고, 넉넉한 공간이 있다. 복잡다단한 도심의 뒷골목에서 벗어나 넓고 여유로운 공간에서 1막 2장을 펼치고자 하는, 한 커피인의 오랜 꿈과 기대가 전제되어 있다.
이담(본명 이종진) 대표는 커피트럭 ‘풍만이’를 몰고 전국 곳곳을 순례했던 커피전도사다. ‘바람커피로드’란 저서의 저자이자 독립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작심하고 일군 연남동 골목카페 바람커피 본점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커피 맛집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5년을 갈고 닦은 끝에 아늑하고 정겨운 분위기의 쉼터로 자리잡았지만, 코로나의 충격과 저가커피의 공습, 젠트리피케이션의 쓰나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바람커피 1호점은 “원상복구가 겁나서’, ‘임자가 나설 때까지’ 가게 문은 열고 있는 상태. 그 자그마한 반지하 공간에서 이 대표는 풍만이 시절과 제주에서의 경험과 내공을 살려 커피 오마카세를 선보이는 등 커피향의 농도와 밀도를 더하고 나눠 왔다.
그는 커피는 그 자체로 훌륭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바리스타는 단지 커피 원두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맛을 최대한 잘 끌어내는 존재일 뿐이라고 여긴다. 순간적인 맛보다 경험과 여운, 소통과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커피 자체의 맛보다 마신 후의 느낌이나 생각, 기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에게 카페는 쉼과 위로의 공간이다. 커피를 통해 잠시 쉬고 마음을 정돈하며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한 아지트라는 것이다. 그래서 커피를 내리는 사람보다 커피를 마시는 손님의 경험과 반응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손님이 커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는 지가 바람커피의 핵심 철학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점에서 바람커피는 단순히 맛이나 트렌드에 집중하는 일반 카페와 달리, 커피를 매개로 한 경험과 여운, 그리고 쉼의 가치를 강조하는 독특한 철학을 이어가고 있다.
이 대표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Q: ‘바람커피‘라는 이름이 참 정겹습니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A: 제가 커피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곳이 제주도였어요. 그때 느꼈던 제주의 기분 좋은 바람’과, 이곳에 오시는 모든 분이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중의적으로 담았습니다. 이름처럼 누구나 잠시 머물다 가는 바람 같은 공간이 되길 원했죠.
Q: 처음부터 커피를 업으로 삼으신 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커피와는 어떻게 처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A: 제주도 거주 당시, 주변에 마음에 드는 커피집이 없어서 ‘직접 볶아보자’ 했던 게 시작이었어요. 처음엔 후라이팬에 볶아보고, 자작 로스터기부터 통돌이까지 안 써본 도구가 없었죠. 그러다 제주도의 한 커피 장인을 만나면서 커피의 깊은 매력에 완전히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 만남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된 셈이죠.
Q: 5년 동안 커피 트럭으로 전국을 누비셨다고요. 그 경험이 지금의 커피 철학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A: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손님이 저의 스승이었습니다. 사람마다 원하는 맛과 향이 다 다르잖아요. 그분들과 대화하며 ‘커피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 과정이 제 커피의 관점과 맛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Q: 연남동에서 양평으로 자리를 옮기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도시와 시골에서의 작업 환경도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A: 연남동에서 5년 정도 카페를 운영했는데, 코로나19와 젠트리피케이션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겹쳤어요. 그러다 이곳 양평의 마당 있는 공간을 보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도심에서는 젊은 분들이 바쁘게 커피를 들고 나갔다면, 여기 손님들은 30분 이상 머물며 천천히 여유를 즐기세요. 그 여백이 커피와 손님 모두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죠.
Q: ‘바람커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메뉴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A: 요즘은 양평 지역 특산물인 ‘복분자’를 활용한 커피를 실험적으로 선보이고 있어요. 블랙라즈베리의 산미와 커피의 조화가 꽤 흥미롭거든요. 이 외에도 다양한 원두를 블렌딩하거나 디카페인, 대체 커피 등 카페인에 민감한 분들도 즐길 수 있는 메뉴를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커피를 못 마시는 분들도 이곳에선 충분히 즐거우셨으면 좋겠거든요.
Q: 복분자 커피의 맛과 향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나요?
A: 복분자가 가진 특유의 상큼하고 산뜻한 과일 향이 커피의 풍미와 어우러져, 일반 커피보다 더 산미가 강조됩니다. 복분자의 자연스러운 단맛과 진한 과일 향이 커피의 쌉쌀함과 조화를 이루어, 복합적인 맛을 느낄 수 있죠.
과일의 여운이 커피의 뒷맛에 남아, 마신 후에도 상쾌함과 특별한 향이 오래 지속된다는 장접도 가지고 있어요. 기존의 커피와는 다른, 실험적이고 독특한 맛을 경험할 수 있어 커피 애호가 뿐 아니라 새로운 맛을 찾는 손님들에게도 인기가 있습니다.
Q: 복분자 커피의 맛과 향을 제대로 살리려면 어떻게 볶는 게 좋을까요?
A: 복분자 커피의 상큼함과 과일 풍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라이트나 미디엄으로 볶아야 합니다. 라이트 로스트는 밝은 산미와 과일향이 잘 살아 있어 복분자의 상큼함과 조화를 이루고, 미디엄 로스트는 산미와 단맛, 바디감이 균형을 이루어 복분자와 커피의 풍미를 동시에 즐길 수 있습니다.
Q: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커피‘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A: 저는 커피라는 존재 자체가 이미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저 그 본연의 맛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실수만 하지 말자는 자세로 임합니다. 설령 맛이 조금 덜하더라도, 마신 후에 어떤 생각이나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여운이 남는 커피가 정말 좋은 커피라고 믿습니다.
Q: 이곳을 찾는 분들이 어떤 경험을 안고 돌아가길 바라시나요?
A: 바람커피는 단순한 음료 판매점이 아니라 ‘쉼과 재충전의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커피 한 잔을 매개로 자신의 마음을 정돈하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해요. “커피는 정말 훌륭한 것이구나”라는 점을 많은 분이 체감하실 수 있도록, 저는 앞으로도 기분 좋은 실험을 계속해 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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