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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커피 한 잔에 담긴 문화사, 끽다점에서 카페까지

교육학자이면서 커피인문학자의 세번째 커피 이야기 『커피 한 잔에 담긴 문화사, 끽다점에서 카페까지』가 나왔다. 『커피 세계사+한국 가배사』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에 이어 발간한 이 책은 커피라는 작은 물질을 통해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이해하고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흥미롭게 전한다. 단순한 음료로서의 커피를 넘어 역사, 문화, 사회 등 다양한 관점에서 커피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한다.

총 24장에 107개로 구성된 에피소드에는 개항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굴곡 진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한 커피 역사가 어우러져 있다. 베르뇌 신부가 서울에서 마신 첫 커피 이후 164년 동안 단순한 기호 음료가 아니라 우리 삶에 깊이 스며들어 인류의 역사와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위로의 음료, 격려의 음료로 자리매김하기까지의 과정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조선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고관대작만 마실 수 있는 커피가 위안의 음료로 대중화하기 시작한 시기는 1910년 전후다. 그 배경에는 끽다점에서 시작하여 발전한 카페 문화가 있다. 개화 바람을 타고 커피와 함께 등장한 끽다점은 이후 다방을 거쳐 카페, 음악다방, 커피숍, 프랜차이즈점 등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며 차나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넘어 문화를 소비하는 장소로 바뀌기까지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조선을 사로잡은 검은 음료

식후 커피는 국룰이라는 말이 있듯 커피는 이제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음료가 되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커피를 즐기게 된 것일까. 문헌상 커피가 전래된 지는 164년. 베르뇌 신부가 1860년에 주문하여 1861년에 전해받은 18킬로그램의 커피가 조선에 처음 들어온 이후 선교 목적으로 쓰인 이래 상류층을 비롯하여 왕실에서도 커피를 향유하기 시작했다. 왕실에서는 접대용으로 제공된 공적 음료로 사용되거나 커피를 즐긴 고종의 개인적 음료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커피는 조선의 고위 관리들과 외교관들이 손님 접대용으로 사용하는 사회적 음료로 통용되었다.

그즈음 커피는 가비, 가배, 갑비차, 카피차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며 신문에 등장했다. 독일인 고샬키가 정동에 개업한 식료품점과 베이커리 카페, 조선인 윤룡주가 홍릉역에 낸 다과점을 시작으로 커피 판매점 광고가 실렸다. 이는 커피가 대중화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커피 애호가 고종을 비롯하여 조선을 사로잡은 커피 원두는 어떤 종류였을까? 기록으로는 전해지지 않지만 커피 역사로 보았을 때 아마도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된 커피나 필리핀 커피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커피 녹병으로 동남아시아 커피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동남아시아산 커피에서 서서히 일본 상인들이 들여오는 브라질 산토스커피로 바뀌기 시작했다.

 

모던의 상징, 지성인의 일상

1920년 광란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근대적 신인류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등장했고 우리나라 고유의 커피 문화를 잉태했다. 이른바 커피는 소비문화를 주도하던 ‘모던’의 상징이었다. 끽다점이 대중화되면서 등장한 다방은 커피 붐을 타고 문화예술인의 아지트가 되었다. “조선의 다방은 거리의 오아시스였고 청춘의 꿈이 있는 가장 조선스러운 곳이었다.” 영화감독 이경손이 운영한 카카듀를 비롯하여 낙랑파라, 제비, 멕시코 등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음악을 듣고 세상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리의 안식처였다.

하지만 6·25전쟁 후 다방은 굴곡과 부침을 겪으며 문화예술 소통의 기능을 넘어 서비스업 형태의 상업다방으로 변모했고 마담과 레지가 등장하고 성을 상품화하는 티켓다방이 성행하면서 차츰 퇴폐화되었다. 이후에는 커피믹스와 커피 자동판매기가 널리 확산되면서 인스턴트커피의 대중화와 함께 다방은 더욱 보편적인 공간으로 자리잡고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커피공화국의 얼죽아사랑

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 일명 ‘얼죽아’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아이스커피 사랑은 압도적이다. 아이스커피의 인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아이스커피의 대유행은 1930년대로 거슬러올라간다. 정확히는 찬 커피, 일명 ‘찬커’가 인기였다. 이때부터 찬 커피 사랑은 남달랐다.

예나 지금이나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아이스커피는 어떻게 처음 탄생되었을까? 아이스커피는 마자그란전투에서 더위에 지친 프랑스군이 커피 시럽에 찬물을 넣어 마신 데서 유래했다. 수인성 전염병 때문에 서양에서는 대부분 커피 메뉴에서 사라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얼음산업이 폭발하면서 아이스커피가 대세였다. 그 인기를 실감하듯 각종 신문에는 찬 커피에 어울리는 원두 선택법과 아이스커피 만드는 법이 실렸다.

 

기호식품에서 문화음료로

조선왕조가 저물고 외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개혁의 바람이 불었던 구한말 격동의 시기의 커피는 낯설지만 위안의 음료였고, 문화인의 상징이었던 근대의 커피는 지식인들을 사로잡은 매혹의 음료였으며, 광복 후 얌생이들이 빼돌린 불법 커피는 시대를 상징하는 음료였다.

저급한 인스턴트커피와 자동판매기 커피가 소비자들의 입맛을 지배하고 다방이 퇴폐의 길로 들어선 1970, 80년대의 커피는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맛을 잃은 음료였고, 커피전문점과 원두커피를 추구하는 전문인들이 등장한 19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커피는 기호식품이 아닌 문화음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우리 역사 속에서 커피는 크게 보면 네 번의 큰 파도를 지나왔고 지금 다섯번째 큰 파도를 맞고 있다. 마지막 파도를 슬기롭게 헤쳐나가면 아마도 세계 최고 수준의 커피를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커피의 향방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길상 저자는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교육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커피 교재를 읽다가 커피 역사에 빠져들었다. 『커피 세계사+한국 가배사』(2021),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2023)가 널리 알려지며 커피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2024년부터 2025년까지 KBS 제1라디오에서 매주 1회 생방송 ‘커피로 맛보는 역사’를 진행했다. 현재는 유튜브 채널 〈커피히스토리〉 운영, 커피 칼럼 집필, 커피 강연 등을 하며 낭만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다.

coffeeandteam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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